본 사이트에 게재되는 자료 등은 정부의 위탁 사업하에서 유식자의 조언을 받아 조사, 수집 및 작성된 것으로 본 사이트의 내용은 정부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별 주제 해설

시대 구분 II 다케시마가 시마네현으로 편입된 1905년(메이지 38년) 전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메이지 시대(1868~1912)~1945년(쇼와 20년)

다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 이야기

해설 동영상 Part1 어부들의 다케시마 진출

재생 시간 / 00:04:21 Youtube

해설

다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 이야기
 이 해설 동영상에서는 메이지 시기에 산인(山陰)지방 어부들이 활동 범위를 넓힘에 따라 다케시마에서 강치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며, 이후 사업가인 나카이 요자부로(中井 養三郎)가 일본 정부에 다케시마 대여 청원을 제출하기로 결심한 경위를 소개합니다. 그 후 나카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설명과 교섭한 내용을 다루고 1905년 1월 다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이라는 국무회의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메이지 시기에 관해 한국 정부가 펼치는 그들만의 주장을 소개하며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점에 대해 해설합니다.

Part1:어부들의 다케시마 진출
 Part1에서는 시마네현의 어업 정책에 힘입어 산인지방 어부들의 활동 범위가 확대됐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다케시마에서 강치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1903년 나카이 요자부로가 사람을 보내 다케시마에서 강치잡이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나카이가 다케시마에 건너가 보니, 강치잡이를 하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어 이미 과당경쟁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카이는 이렇게 남획되는 강치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 정부에 다케시마의 대여 청원을 설명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케시마가 시마네현에 편입되기에 이르렀다는 점, 즉 다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이 어부들의 진출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해설합니다.

Part2:나카이 요자부로의 다케시마 대여 청원
 Part2에서는 나카이의 다케시마 대여 청원을 계기로 하여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나카이는 먼저 지인의 소개로 농상무성을 찾은 데 이어 해군 수로부와 내무성을 방문했습니다. 이후 외무성 정무국장을 만나 다케시마에 대한 견해를 듣고 이를 내무성에 전달하여 이해를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 후 내무성이 외무성과의 조정을 거쳐 시마네현에 확인한 뒤에 다케시마의 시마네현 편입이라는 국무회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등 협의와 조정을 거쳐 다케시마가 시마네현에 편입됐다는 사실에 대해 해설합니다.

Part3:한국 정부의 근거 없는 주장
 Part3에서는 이 시기에 관해 한국 정부가 ‘1900년의 칙령으로 다케시마를 울도군에 편입했다’, ‘나카이 요자부로는 다케시마를 조선 영토로 생각했다’, ‘일본은 군사적 가치를 이유로 다케시마를 한국으로부터 빼앗았다’ 등 그들만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에 근거가 없다는 점에 대해 설명합니다.
 또한 1900년 칙령으로 울도군에 편입되었다고 하는 섬(‘석도’)에 대해, 한국 정부는 ‘석도’가 바로 현재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1900년 칙령 청의서에 나타난 울도군 범위에 다케시마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합니다. 이와 함께 다케시마가 시마네현에 편입된 경위를 다시 살펴봄으로써 한국 정부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해설합니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