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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주제 해설

시대 구분 I  막부의 허가를 받아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이 울릉도, 다케시마에 도항을 시작한 이후(에도 시대: 1603~1868)

(1)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의 울릉도, 다케시마 도항

1.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의 울릉도, 다케시마 도항

竹島 位置関係図
위치도

 1617년(겐나 3년), 회선업(廻船業)에 종사하던 요나고의 주민인 오야 진키치(大谷甚吉)는 에치고(越後:현 니이가타) 지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난을 당해 표류하다 울릉도에 도착했다. 섬을 조사한 오야는 그 섬이 무인도이고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을 이유로 개발을 결심했다No.1. 오야는 같은 요나고 주민인 무라카와 이치베(村川市兵衛)와 공동으로 막부에 청원하였고, 1618년(겐나 4년), 에도 막부는 돗토리 번주 앞으로 오야, 무라카와 두 가문의 울릉도 도항 허가를 통지하여 사업이 시작되었다(※1).

 이후 두 가문은 매년 교대로 울릉도에 도항하여 몇 개월씩 체류하면서 전복, 강치를 중심으로 각종 산물을 잡았으며No.2 도항 도중에 다케시마를 항해의 이정표로 삼고 강치나 전복잡이 장소로 이용했다No.4.
 또한 두 가문은 매년 이익을 합산하여 나누는 계약을 맺었다No.10.

2. 막부 공인 사업

 막부는 오야, 무라카와에게 쇼군 알현(배알)(※2)을 허락했으므로 오야, 무라카와는 몇년에 한 번씩 쇼군을 알현했다. 그때 막부의 각료에게 울릉도와 다케시마의 특산물을 올렸다No.5No.6No.7.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의 울릉도 도항은 아베 시로고로(阿倍四郎五郎)(※3)라는 하타모토(쇼군 직속 무사)가 막부 최고 관직인 로주(老中)에게 청원하여 로주들의 연명으로 돗토리 번주 앞으로 허가를 냈으며, 이후에도 아베 시로고로가 오야, 무라카와와 막부를 중개하는 형태로 알현과 특산물 헌상이 이루어졌다. 돗토리번은 오야, 무라카와에게 자금을 빌려주거나 특산물을 사들여서 빚을 상쇄해주는등 사업을 지원했으며No.3 이는 막부 공인하에 이루어졌다. 막부는 1633년(간에이 10년)에 이른바 쇄국령을 내렸지만 울릉도와 다케시마에는 계속 도항하였다.

3.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문서

2019년 1월에 시마네현에 기증된 문서들
사진: 시마네현 총무부총무과 다케시마대책실 제공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에는 그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특히 오야 가문에 관해서는 많은 자료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전래해 왔다. 이는 〈오야가 문서〉라 불리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자료조사에서는 〈돗토리 번정 자료〉(돗토리 현립박물관 소장)를 비롯하여 각 지역 기관에서 소장된 에도 시대의 다케시마 관련 자료에 관해 확인을 했는데, 그 중 2019년도 자료 조사에서는 기증받은 오야가 문서 일부를 촬영한 사진 데이터를 시마네현에서 제공받았으므로 소개하는 바이다 (2019년 1월, 많은 문서가 시마네현에 기증되었다. 사진 참조).

 또한 2015년도 자료 조사에서는 돗토리 번정 자료 내의 〈어용인 일기〉중 1695년(겐로쿠 8년)에 다케시마에서 채취한 전복을 통째로 말려 돗토리번이 쇼군에게 올린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사진 데이터)를 돗토리현립 박물관으로부터 제공받았다No.8.

4. 훗날 작성된 자료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의 울릉도 도항은 쓰시마번을 통한 일본과 조선 간의 교섭에 의해 1696년(겐로쿠 9년)에 금지되었으나, 훗날 작성된 자료 중에서도 오야 가문, 무라카와 가문의 도항을 전해주는 기록이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돗토리번에서 요직을 맡은 무사(오카지마 마사요시(岡嶋正義))가 1828년(분세이 11년)에 편집하여 울릉도와 다케시마의 지리, 특산물들이 기재한 〈다케시마 고(考) 〉No.4 를 실었다.

※1 울릉도는 그 당시 〈다케시마〉라 불렸기 때문에 이 허가통지는 〈다케시마〉 도해 허가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이 허가는 1625년(간에이 2년)에 내려져 있었다는 설도 있다.
※2 하타모토, 고케닌이란 쇼군 직속 무사계급 중에서도, 쇼군 알현은 원칙적으로 하타모토에 한해 허락되었다.
※3 아베가문에서는 대대에 걸쳐 시로고로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또한 오야는 큐에몬, 무라카와는 이치베라는 이름을 역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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