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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 논점

칼럼 ‘실효 지배’라는 표현에 대하여

미요시 마사히로(三好 正弘) (아이치 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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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도서(島嶼) 영토를 둘러싼 일본이 떠안은 상황에 대하여 세간에는 ‘한국이 다케시마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 ‘중국이 센카쿠 제도의 실효 지배를 노리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어 그러한 표현이 이미 정착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와 같이 ‘실효 지배’라는 말은, 언론이 사용하기 시작해 일반 대중으로 확산되었겠지만, 그 의미는 법이나 정의를 무시해서라도 힘을 행사하여 어떤 영토를 점유하고 지배하는 사실상의 상태 또는 이를 노리는 행위를 지칭하는 듯하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알기 쉽고 특별히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조금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애초에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주장은 어느 시기 이후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센카쿠 제도는 일본이 국제법상 정당하게 실효적 지배를 계속 확립해 온 영토로 중국이 말하는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실효 지배’에는 무조건 힘을 행사하여 사실상 점유 상태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정사실화하여 정당화하는 것을 노리는 행위를 시인하는 뉘앙스가 있다는 점이다. 사태를 정확히 표현하려면 ‘실효 지배’가 아니라 ‘사실상의 지배를 노리는 행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국제법 전문가들은 어째서인지 말을 아껴온 듯하다.

1. 실효적 지배(effective control)의 개념

 근대 국제법에서는 국가가 어떤 영토를 소유하고 이에 대해 주권을 가진다는 것은 거기에 ‘국가의 권능이 외국과의 다툼 없이 , 또한 단절되지 않고 나타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수많은 국가 간의 영토 및 국경 분쟁에 관한 국제 재판 판례를 살펴보면 ‘국가 권능’의 표시 방식이나 정도는 그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무인 상태의 낙도일 경우 국가의 영유 의사를 나타내는 최소한의 행위로서 국가명을 표기한 표주(標柱)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필요하다. 거주자가 있으면 이에 대한 국가의 행정 행위(예를 들면 세금 징수 등)가 있으면 된다고 여겨진다. 극지(極地)에 가까운 거주 조건이 나쁜 지역인 경우에는 국가 공공시설로서, 예를 들면 기상관측소 등이 설치되어 있으면 될 것이다.

 국가 권능의 표시 행위가 꼭 명확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역이라도 거기에 국민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면 이를 고려했다고 여겨지는 판례도 있다. 아마 보기 드문 예외라고 봐야겠지만 1966년의 ‘아르헨티나.칠레 간의 비글해협 분쟁 ’ 중재 판결이 이에 해당하며, 이 사건에서는 해당 국경 지역에 그 국가의 국적을 가진 이주민 인구가 많았다는 사실이 있어 이주민들의 생활 편의성이 고려된 듯하다1. 이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에 있는 분쟁 지역의 경우에도 주권 또는 영유권을 다투는 양 당사국의 주장을 저울질하여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쪽을 인정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통은 국가의 공적인 행위가 평가 대상이 되지만 영유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리적 조건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여기까지 추상적인 개념 규정을 설명했는데, 실질적인 문제로서는 구체적인 사태의 경위 및 사정도 언급한 후에 그 법적인 의미의 객관적 평가를 덧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즉, 국제법의 개념을 바탕으로 ‘실효 지배’를 평가한 보도를 해야 하지만 실제 보도에서는 거의 결여되어 있다. 국가의 근간인 영토에 대한 주권 및 영유권에 관한 일인 만큼 문제의 정당한 평가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주1

이 중재 재판에서 아르헨티나 측 보좌인을 맡은 제닝스가 나중에 쓴 논문에서 그 취지를 지적하고 있다. Jennings, R. Y., “The Argentine-Chile Boundary Dispute – a case study”, International Disputes: The Legal Aspects (Report of a Study Group of the David Davies Memori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London: Europa Publications, 1972, pp. 324-325. 자세한 사항은 Miyoshi, Masahiro, Considerations of Equity in the Settlement of Territorial and Boundary Disputes (Dordrecht/Boston/London: Martinus Nijhoff Publishers, 1993), pp. 159-162, 196-197.

2. 분쟁(dispute)과 크리티컬 데이트(critical date)

 여기에서 ‘분쟁’과 ‘크리티컬 데이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실효적 지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영토를 둘러싼 관계국 간의 다툼이 있기 때문인데 그 다툼이 언제부터 시작되어 어떠한 경위를 거쳐 왔는지를 먼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다툼=분쟁에 대하여 국제연합헌장 제34조에서는 ‘어떠한 분쟁에 관하여도, 또는 국제적 마찰이 되거나 분쟁을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어떠한 사태에 관하여도’ 라는 표현을 사용해 ‘국제적 마찰 (international friction)’, ‘분쟁 (dispute)’, ‘사태 (situation)’를 구별하고 있어 ‘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분쟁’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살펴보면, 국제 판례에서는

분쟁이란, 두 주체 간의 법적 논점 또는 사실에 관한 논점과 관련된 불일치, 즉 법적 견해 또는 이익의 대립이다.

라든지

국제 분쟁의 존재는 객관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분쟁의 존재를 단순히 부정하기만 해서는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중략) 따라서 조약상의 일정 의무의 이행 또는 불이행에 관해 양 당사국의 견해가 명확히 대립하는 사태가 (중략) 존재하는 경우 재판소는 국제 분쟁이 발생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라고 설명되어 있다2 . 요컨대 ‘당사국 간에 견해나 이해의 대립이 있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법적 견해의 대립일 경우 ‘분쟁’이 발생했다’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명확한 법적 견해의 대립점을 찾아볼 수 없는 다툼은 국제 재판에서 ‘분쟁’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분쟁’이 언제 발생했는가 하는 시간적 요소이다. 국가 간의 영토를 둘러싼 다툼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이에 당사국 간에 무언가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법적 쟁점이 떠오르게 된다. 관련 다툼이 국제 재판에 회부된 경우 재판소가 양 당사국의 주장을 정리하여 ‘분쟁’의 존재와 그것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를 확정하고 분쟁 발생 시점을 ‘크리티컬 데이트(결정적 기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데, 이 시점까지의 당사국의 행위는 고려해야 하는 행위, 이른바 실적으로 인정되지만 이 시점 이후의 당사국의 행위는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 고려 대상이 되는 행위를 ‘실효적 지배’라고 한다. 재판에서는 ‘실효적 지배’의 정도를 비교하여 더욱 강력한 쪽을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영유권을 인정하게 된다.

 따라서 ‘크리티컬 데이트’ 이후의 행위는 당사국이 ‘실효적 지배’ 행위라고 주장해도 재판에서는 고려되지 않으며 인정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이른바 노 카운트가 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크리티컬 데이트’ 이후의 행위를 고려 사항에 포함시키게 되면 자국에게 유리해지도록 염치없이 '실적'을 쌓으려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양 당사국 간의 관계 질서를 함부로 해치고 일반 국제 관계의 법질서를 훼손하며 공정성에 어긋나게 될 것이다. 단, 이는 국제재판소라는 제3자 기관이 객관적으로 ‘크리티컬 데이트’를 판단하여 그렇게 되는 것으로 당사국이 정확한 ‘크리티컬 데이트’를 의식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당사국은 어느 정도 '크리티컬 데이트'를 예측하고 이에 맞춰 '실적'을 쌓으려고 행동할 수도 있다. 그 점에 사태가 복잡화되는 이유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 제3자 기관인 재판소의 판정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여기에서 1953년 영국-프랑스 ‘망키에·에크르오 사건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 전개된 ‘분쟁’과 ‘크리티컬 데이트’ 논의를 살펴보자. 이 사건에서는 양 당사국이 영불 해협의 생말로만 앞바다에 위치한 망키에 제도 및 에크르오 제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로 생각되는 자국의 행위를 상세히 제시하고 ‘크리티컬 데이트’를 자국에게 유리하도록 설정하여 두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프랑스는 1839년의 영불 어업조약을 크리티컬 데이트로 설정하고 이후 사태의 전개를 어느 한쪽의 실효적 지배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은 본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로 양국이 합의한 1950년을 크리티컬 데이트로 설정하고 그때까지의 사실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 특히 영국은 매우 상세하게 크리티컬 데이트론을 전개했지만 재판소는 그 정도로 상세하게는 검토하지 않고 양국의 주장을 다움과 같이 요약하여 판정을 내렸다.

영국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양 당사국은 두 도서군에 대한 주권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의견을 달리해 왔지만, 1950년 12월 29일의 특별 협정 체결 이전에는 분쟁이 “결정화”되어 있지 않았다(the dispute did not become “crystallized”). 따라서 이날을 크리티컬 데이트로 생각해야 하며 그 결과 이날 이전의 모든 행위가 재판소에 의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1839년 조약의 날이 크리티컬 데이트로 선택되어야 하며 그 후의 모든 행위는 고려 사항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1839년 조약 체결 시점에는 에크르오 및 망키에 양 도서군에 대한 주권을 둘러싼 분쟁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양 당사국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굴 채취의 배타적 권리를 둘러싸고 다투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에크르오 및 망키에 양 도서군에 대한 주권 문제와 연관짓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하에서는 주권에 대한 증거를 채택 또는 제외하는 문제에 대해 해당 조약 체결이 어떠한 효과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이들 도서에 대한 주권에 관한 분쟁은 1886년(에크르오 제도에 대해서: 인용자) 및 1888년(망키에 제도에 대해서: 인용자)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았고 이때 프랑스는 처음으로 에크르오 제도 및 망키에 제도 각각에 대해 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본건의 특별한 사정에 비추어 보아 문제의 조치가 관련 당사국의 법적 지위를 개선할 목적으로 취해진 것이 아닌 한, 그 후의 행위 또한 재판소에 의해 고려되어야 한다. 많은 측면에서 이들 도서군을 둘러싼 활동은 주권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으며 해당 활동은 이후에도 중단되지 않고 또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사정하에서는 이 계속적인 발전 과정에서 1886년 및 1888년 이후에 각각 발생한 모든 사실을 제외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3 (밑줄은 인용자)

재판소는 양 당사국의 다툼 양상을 분석하고 대상 영토에 대한 주권 의식에 근거한 행위가 서로 충돌한 시점을 파악하여 에크르오 제도에 대해서 1886년, 망키에 제도에 대해서는 1888년에 ‘분쟁’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고 그 시점을 ‘크리티컬 데이트’로 판정했다. 그러나 본건의 '특별 사정'에 비추어 보아 이후 제도에서 이루어진 영국의 계속적인 활동은 '법적인 지위를 개선할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여 1950년 재판소 제소를 위한 협정 시점까지의 행위를 고려하기로 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 판례에 근거한 ‘실효적 지배’의 기본적인 의미는 ‘정당한 실효적 지배’라는 것이며 이는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인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세간에서 말하는 ‘실효 지배’는 다소 어설픈 표현으로, 의미하는 바도 다소 어설픈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2

전자는 1924년 ‘마브로마티스의 팔레스타인 양허협정 사건(선결적 항변)(Affaires des Concessions Mavromatis en Palestine(Exception d’incompétence))’, PCIJ Publications, Series A, No. 2, p. 11. 후자는 1950년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평화 조약 해석 사건(Interprétation des Traités de Paix Conclus avec la Bulgarie, la Hongrie et la Roumanie)’, ICJ Reports 1950, p. 74.

주3

The Minquiers et Ecréhos case, Judgment of 17 November 1953, ICJ Reports 1953, pp. 59,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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